(생활법문)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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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748회 작성일 19-12-15 00:16본문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잘 살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사실은 불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경전인 금강경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수보리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금강경이라는 경전 자체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낸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라고 수보리가 묻자,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완전한 열반의 경지에 들게 하리라.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였으나 완전한 열반에 든 자는 참으로 없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한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해서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가도록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했다는 마음은 티끌만큼도 가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올바른 서원을 굳게 세우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이야말로 가장 크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강력한 욕망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원대한 서원을 세운다 해도 단지 마음 속애 품고만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치 담배를 끊겠다고 생각만 하고 실제로는 끊지 않는 것과 꼭 같습니다.
담배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가 어떻게 해서 담배를 끊게 되었는지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출가 전에 저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편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루에 한 갑 반 정도는 피운 것 같습니다. 물론 끊어보려고 나름 노력했습니다만, 몇 번 시도해본 끝에 포기했습니다. 결국 출가하는 날까지 담배를 끊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출가하던 날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 서서히 줄인 것도 아닙니다. 출가한 날 이후로 뚝 끊어버린 것입니다.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삶의 방식이 한순간에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출가하기 위해 송광사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제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출가와 동시에 저는 너무도 낯선 환경,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 처음 접하는 문화와 생활방식 속에 내던져졌습니다. 완전히 바뀐 삶 속에 담배를 위해 마련된 공간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담배를 끊게 되었던 것입니다. 졸지에 저는 금연하려는 의지도 없이 금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담배를 끊으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못했는데 어찌된 일이지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도 없이 나도 모르게 담배를 끊어 버린 것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담배를 끊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한참동안 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걷고, 앉고, 눕고, 자고, 말하고, 일하는 모든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생각을 달리 한다고 곧바로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바뀐 생각이 무르익어서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바뀌고, 습관이 바뀌어야 비로소 삶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야 본인이 원하는 삶,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살아가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불교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행복하게 하리라는 서원을 세우고, 그 서원에 따라 매 순간을 살아가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진정한 행복 즉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실제로 그렇게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수행이라는 말의 뜻풀이를 하자면 행동을 갈고 닦는다는 말입니다. 수행은 힘들고 금욕적인 고행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치열하게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동물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막 살겠다고 굳게 결심하지 않는 이상, 하루하루 인간답게 사는 게 바로 수행입니다. 하루하루를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다운 모습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바꾸어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것이 곧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수행자다.’라는 마음만 잃지 않으면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행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면 됩니다.
얼마 전에 동구에 사는 중학생 60여명과 함께 동북아 역사탐방을 다녀왔습니다. 광개토왕비와 장수왕릉, 백두산 천지, 한국전쟁 당시 끊어진 압록강 철교, 독립지사들이 재판받던 관동법원, 신채호 선생과 이회영 선생 같은 분이 옥고를 치르고 안중근 의사가 처형당한 여순감옥 등을 보고 왔습니다. 드넓은 만주를 무대로 고난에 찬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우리의 선조들과 더 멀리는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가슴에 담아 왔습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날 무렵 가이드가 연변지역 가면 정말 많은 독립운동의 유적들과 조선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면서 대표적으로 윤동주 시인의 생가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윤동주 시인의 생가는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우리들에게 ‘별헤는 밤’같은 서정적인 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가혹한 시절, 한민족의 해방이라는 원대한 서원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조선의 청년이었습니다. ‘별헤는 밤’과 더불어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시로 ‘서시’가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데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음’은 곧 매순간 나의 삶이 내가 세운 서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곧 살아 있는 모든 생명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윤동주 시인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일제의 마루타가 되어 차디찬 감옥에서 꽃다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식민지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청년 윤동주의 마음속에 불교의 정신이 담겨 있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매일 아침 윤동주 시인의 서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첨부파일
- 191101_중현스님.MP3 (10.0M) 3회 다운로드 | DATE : 2019-12-17 23: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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