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문) 수행의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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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782회 작성일 19-12-16 09:41본문
<수행의 배터리>
차가 잘 달리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선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첫째, 고장이 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정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운전을 잘하는 드라이버가 있어야 하고, 셋째, 목적지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차는 결코 달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면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어야 합니다. 배터리는 처음 공장에서 나올 때, 충전된 상태로 나옵니다. 그러나 배터리를 계속 충전시키려면 달려야 합니다. 배터리는 달려야 충전됩니다. 깜박하고 라이트를 켜놓은 채로 밤새 주차해 놓으면 다음 날 아침에 방전되기 십상입니다. 이럴 땐 전화로 구조요청을 하는 수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수행을 잘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있고,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수행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여건이 갖추어져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정작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차가 아무리 좋아도 달리지 않고 차고에만 모시고 있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수행을 한다 하더라도 잠깐 맛보기로 해보고 만다면 역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발심이 되지 않으면 모든 여건이 갖추어져도 부질없습니다. 누구나 부처될 가능성과 능력은 타고납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관리를 소홀히 하여 방전되어 버린 차가 결코 스스로 힘으로 달릴 수 없듯이 말입니다. 발심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로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달려야 배터리가 충전되듯이 발심 역시 멈추지 않는 수행 속에서만 키워집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뜯어보면 좀 이상합니다. 결국, 달려야 달린다는 말입니다. 수행하면 수행한다는 말입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니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공부 잘하면 공부 잘한다면 말이나 똑같습니다. 뭔가가 더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살아가는 의욕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다가도 기도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의욕 상실, 회의가 바로 마음의 고통, 즉 번뇌입니다. 지금 기도를 관두고 나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고 싶은데 다 가고, 보고 싶은 사람들 다 본다고 해서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냐 하면 결코 아닙니다.
누군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밖에서 불어오는 거친 역경이 마음의 고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명의 어둠이 번뇌를 만들어낸다’ 그렇습니다. 잔뜩 먹구름이 낀 하늘을 보고, 다음날 소풍 갈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는 아이는 혹시 비라도 오지 않을까 마음이 불안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가뭄으로 비를 기다리던 농부는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나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의 말 속에 짜증이 담겨 있다면,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은 다 짜증이 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은 단지 말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 모두가 짜증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에게는 소풍 가서 재밌게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먹구름이 다가오자 그 마음이 불안과 걱정으로 바뀐 것입니다. 평소에 내가 옳다, 나는 존중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속에 있으므로 네가 틀렸다는 말이 그런 마음을 짜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먹구름이나 말은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고통의 원인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번뇌가 자라날 싹을 미리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자라난 번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번뇌를 영원히 종식하는 길, 깨닫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자면 부지런히 수행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수행해야 할 이유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야말로 수행하기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면, 수행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조금도 없습니다. 수행의 힘은 정신적 역경에 봉착했을 때 진정으로 빛나는 법입니다만, 마음의 고통을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수행도 가능한 일입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배터리가 전부 다 방전된 상태입니다.
물론 오로지 스스로 힘만으로 정신적 역경을 극복하고 그 속에서 수행의 밑거름, 발심의 자양분을 끌어낼 수만 있다면 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만,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걸음마를 하기 위해서는 천 번도 넘게 넘어진다고 합니다. 넘어질 때마다 오로지 자신의 다짐과 의지만으로 또 일어서서 걷기를 시도한다면 정말 대단한 의지를 가진 아이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 아이들은 걸어 다니는 어른들 특히 엄마를 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본능적 열망을 더욱더 강하게 불태울 것입니다. 그리고 넘어지더라도 바로 곁에서 격려하고 힘을 주고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엄마가 있어서 아이는 또다시 첫걸음을 떼기 위해 일어날 것입니다.
윤회를 거듭하는 중생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곁에 내가 닮고 싶은 모델이 있고, 또 그 모델이 항상 나를 격려하고 응원해준다면,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더욱더 힘을 낼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듯, 우리에게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깨달음에 대한 강한 열망, 깨달음을 성취한 분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 그리고 깨달은 분들을 향한 진심 어린 귀의가 있다면, 발심과 수행의 동력도 강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불보살께 귀의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불보살께 예를 올리고 스스로 발원하는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꾸준하게 하는 예불과 기도는 정신적 역경에 봉착했을 때, 그 역경을 발심의 계기, 수행의 밑거름으로 전환하는 힘을 키워줍니다. 말하자면 수행의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것입니다.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고, 하기 싫을 때도 습관처럼 예불하고 기도하는 것은 마치 자동차의 배터리를 넉넉하게 충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의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다고 해서 차가 잘 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시동은 걸 수 있고 기본적인 기기들은 작동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차가 달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처음 출가하고 강원 다니는 4년 동안, 대웅전 예불이 그렇게 의미 있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4년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새벽마다 예불하고 금강경 독경하고 108배를 했습니다. 여름이면 장삼을 뚫고 물어대는 모기가 괴롭혔습니다, 겨울이면 밖이 훤히 보이는 문틈 사이로 칼바람이 치고 들어와서 온몸이 꽁꽁 얼었습니다. 그런데도 매일 똑같은 구절들을 암송하고, 똑같은 경전들을 독경하고 108배를 했으니 즐거울 리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송광사를 떠나 말사에서 기도할 때면 강원 다니던 당시를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때마다 혼자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이런 기회가 내게 생기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라고 말입니다.
하루하루 일들이 생각대로 되질 않으면 짜증이 나고 조바심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평정이 이런 식으로 흔들리게 되면 곧 그 혼란스러운 자리를 비집고 불신, 절망, 무기력함, 외로움 같은 가지가지 고통이 치고 들어옵니다. 살다 보면 인생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릴 정도로 힘든 시절이 찾아옵니다.
평소에 자주 운행하고 또 잘 관리해야 자동차의 배터리가 충전되듯, 평소에 별다른 성과가 없어 보여도 습관처럼 꾸준히 예불하고 기도해야 수행의 배터리가 잘 충전될 것입니다. 그래야 힘든 시절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자동차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면 A/S 센터를 부르지만, 인생의 배터리가 방전되면 불보살님께 SOS를 요청하면 됩니다. 불보살님께 어떻게 SOS를 요청할 수 있나요? 평소에 꾸준히 예불하고 기도해야 SOS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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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18_중현스님.MP3 (9.9M) 3회 다운로드 | DATE : 2019-12-17 23: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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