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문) 下心하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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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815회 작성일 19-12-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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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心하란 말이오>


하심이 불교 수행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쯤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말로는 하심, 하심 하지만 정작 제대로 하심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심 하기가 힘들어서 하심만 잘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마음을 사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자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이 힘든 하심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후보자들입니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의 모든 시민이라면 누구나 1표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이 있는 사람, 즉 유권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1표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권력은 너무나 왜소하고 보잘것없습니다.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지낼 정도로 존재감이 없습니다. 흩어져 있는 ‘1표의 권력’들을 모아서 덩치를 키워야 비로소 권력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선거철이 되면 우리 유권자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겁니다. 각자 1표만큼의 권력을 후보자에게 몰아주는 일입니다.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1표의 권력’을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권력을 키우고, 또 그렇게 키운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1표 권력을 구걸하는 정치인은 최대한 자신을 낮추어 유권자에게 머리를 숙입니다. 선거철에 후보자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나에게 당신의 ‘1표의 권력’을 달라고, 인사하고 악수하고 호소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1표의 권력’이 보잘것없다지만 유권자들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권력을 정치인에게 적선해 버립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입니다만, 그만큼 하심이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은연중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 내 주머니 속의 ‘1표 권력’ 에 머리 숙인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유권자들은 기꺼이 ‘1표의 권력’을 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거철의 정치인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진리입니다.


하심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명절날의 덕담입니다. 학생 때면 공부는 잘하냐, 대학 졸업하면 취직은 언제 하냐, 취직하면 결혼은 언제 하냐, 결혼하면 애는 언제 낳을 거냐 집은 장만했냐, 애를 낳으면 하나는 외롭다 둘째는 언제 낳냐… 이렇게 어른들의 잔소리 같은 덕담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노총각, 노처녀들은 명절날만 되면 이런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듣습니다. 그나마 이건 나은 편입니다. 번듯한 대학 졸업하고도 아직 취직 못 한 취준생, 몇 년째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사는 공시생은 아예 추석이나 설을 피하려고 합니다.


어른들은 덕담이라고 하지만, 듣는 아랫사람은 잔소리일 뿐입니다. 어른들의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는 '내가 이 집안의 어른인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지나치면 '나'에 대한 보호막이 벗겨져 버릴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주머니는 열고 입은 닫으라”라는 격언이 괜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애정이 없다면 잔소리도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기대하고 바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애정과 관심의 표현인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애정과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해줄 것을 강요하기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아랫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격려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애정이 깊을수록, '나'라는 것을 가리는 보호막은 약해집니다. 그 결과 ‘나’가 옳다는 생각이 더욱더 확고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온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명절날, 집안 어른의 애정이 어린 충고는 꾹 참고 들어야 하는 잔소리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덕담을 듣는 아랫사람이 말 그대로 애정이 어린 충고로 듣고 가슴에 새긴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아랫사람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 내 생각과 다른 말 듣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랫사람도 ‘나’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를 내려놓고 하심 하면 어떤 잔소리도 덕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른이나 아랫사람이나 하심 하기가 쉽지 않으니 명절마다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가 집마다 새 나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나는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 진심으로 해주는 충고인데도,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하심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머리를 숙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하심입니다.


하심이 힘든 건 '나'라는 놈이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남'이 있으니 '나'도 있고, '나'가 있으니 '남'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 밖에 없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나'와 '남'을 비교하고 '나'를 추켜세우려고 합니다. 모든 '나'들이 자기 자신을 추켜세우려 하니, 자연스럽게 '나'는 또 다른 ‘나’인 '남'과 부딪히고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나'를 지켜내기 위해 더더욱 '나'를 추켜세우려 합니다. 결국 '나'의 악순환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하심은 이런 '나'의 악순환을 끊는 일입니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선거철의 정치인들은 그렇게도 철저하게 하심을 잘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첫 번째는 정치인들의 하심은 가짜 하심, 가식적인 하심, 거짓으로 연기하는 하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가식이고 거짓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과연 살면서 선거철 정치인처럼 억지로라도 자신을 낮춘 적이 얼마나 되는지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사회적으로 대접받을수록 더욱더 이런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연기일지라도 자꾸 하다 보면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하다 보면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하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습관처럼 되어서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조금 해 보고 나서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억지로 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자신을 낮추는 만큼 자신의 권력이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심 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분명한 것이지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한데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합니다. 정치인들은 잘하는 것을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렇게도 힘들어할까요? 우리가 하심 해야 할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낮추다 보면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경지, 즉 ‘나’가 사라진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하심 하면 무아의 경지에 이릅니다. 무아의 경지야말로 항상 행복하고, 영원히 행복한 경지입니다. 우리들이 하심 해야 할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 길이 바로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머리 숙이고 절할 때마다 그만큼 행복해지고, 한 번이라도 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경청할 때마다, 그만큼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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