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문) 낡은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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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781회 작성일 19-12-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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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우산>



예전에 파란색 낡은 우산을 가지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무늬 하나 없이 파란 색만 있는 우산이었습니다. 그 단백함과 순수함이 마음에 들어서 여느 우산들과는 다르게 꽤 오랫동안 사용했습니다. 색까지 바랜 낡은 우산이라 얼마 안 돼 고장이 나서 새 우산으로 바꿨습니다.  고장 난 파란 우산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에 약간의 서글픔을 느꼈습니다만, 언제 그랬나 싶게 알록달록한 새 우산에 끌리는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왠지 파란 우산에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찮은 우산 하나에도 애착하는 마음을 읽었습니다. 새 우산에 끌리는 마음을 들켜서 그랬는지 한동안 멍하니 그 우산을 바라보았습니다. 복잡하기 만한 무늬에 칙칙한 밤색의 우산. 당혹함마저 느끼게 하는 변심이 살짝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무늬 없이 담백하고 순수한 그 파랑에 마음이 끌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요. 그랬다면 그토록 쉽게 변심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말한 ‘길들인다.’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파란 우산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길들인다는 것이 뭐냐?”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여우는 대답합니다.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돼. 그리고 넌 내게 이 세상 유일한 것이 되지. 나도 네게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되고..."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삶엔 광명(햇빛)이 비추게 될 거야. 난 모든 다른 발자국 소리들 속에서도 네 발자국을 구분하게 될 거고. 다른 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날 땅속 굴로 들어가게 만들지만, 네 발자국 소리만은 날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마치 음악처럼. 난 빵을 먹지 않는단다. 그러니 저 밀밭들이 내겐 아무 의미가 없어. 그러니 밀밭은 내게 어떤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아. 하지만 넌 황금 머릿결을 가졌잖니. 그러니 네가 날 길들인다면 모든 게 경이로워질 거야! 저 밀밭들이 금빛으로 익어갈 때면 난 널 떠올리게 될 거야. 밀들을 쓸어내리는 바람소리에도 난 설레게 될 거야..." 


그렇습니다. 여우의 말처럼 우리들 주변의 대상은 시간과 공모하여 마음을 길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은 시간과 공모하여 주변의 대상에 애착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힙니다. 그것이 우산이든 옷이든 아니면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애착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린 왕자 식의 길들이기는 취사선택과는 다른 범주의 문제입니다. 피동적으로 주어졌든 아니면 주체적으로 선택하였든 관계의 본질은 길들이는 것, 인간적인 표현을 쓴다면 익숙해지는 것, 자연스러워지는 것, 편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길들여지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도 단지 모자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익숙해지는 것은 애착함의 다른 표현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주변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변이란 사람뿐만 아니라 전화, 텔레비전, 자판기, 지하철, 수세식 좌변기, 카페, 영화 같은 것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인간이 만든 그 모든 것, 우리는 그것을 문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모르게 문명에 길들여졌고,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문명을 자연스럽고 편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문명 속에 있으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문명 바깥으로 나가 보아야 비로소 절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그 정도는 더한 법입니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야 도시가 보인다고들 말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문명을 부정하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일단 어떤 것과 관계를 맺게 되면, 즉 그것에 익숙해지면, 아둔한 인간의 마음은 그 이전의 그것, 내가 애착의 옷을 입히기 전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내가 보고, 만지는 것, 심지어 같이 이야기하는 그 어떤 존재가 사실은 내가 입힌 옷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아이를 잔뜩 꾸미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또 그렇게 성장한 아이를 좋아하는 엄마처럼 말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하나의 관계가 붕괴되면 그 자리는 다른 새로운 관계로 대체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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