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문)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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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836회 작성일 19-12-1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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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



얼마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이제는 없어진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에서 박명수와 정준하가 ‘그랬구나~’ 게임하는 걸 우연히 봤습니다. 무한도전이 끝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무한도전의 레전드 영상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듯합니다. 이 영상도 그런 레전드급 영상 중 하나입니다.  


‘그랬구나~’ 게임은 대략 이런 것입니다. 일단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다정하게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서운했던 것을 말하면, 상대방은 그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말끝에 ‘그랬구나~’를 붙이는 것입니다.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에서는 박명수와 정준하가 ‘그랬구나~’ 게임을 했습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무한상사편이 2011년에 방영되었으니 벌써 9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이 둘의 ‘그랬구나~’ 베틀 영상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걸 보면 이 영상이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문득 길가 연못을 지나다가 정화조 냄새가 나서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연못 부근에 있는 화장실의 부실한 정화조 때문에 연못에서 정화조 냄새가 난 모양입니다. 이것은 그냥 ‘사실’, 즉 fact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접하고 짜증이 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길가의 연못은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 연못이 깨끗하려면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이 이미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견해’ 혹은 ‘주장’이지, 객관적인 ‘사실’은 아닙니다. 만약 여기가 인도라면 악취를 풍기는 연못을 지나며 짜증을 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려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한국이기 때문에 앞서의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사실’이 나의 ‘견해’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짜증이 난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아무런 ‘견해’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전혀 없이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꾸리기조차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이 자신의 ‘견해’ 혹은 ‘주장’과 항상 일치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짜증’은 자신의 ‘견해’ 즉 자신의 생각이 즉각적으로 ‘사실’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사실’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짜증’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각’에 묻어나게 됩니다.  


‘그랬구나~’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한 뒤에 ‘그랬구나~’를 붙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게임에 충실하려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말을 신경 써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기억해서 반드시 그대로 다시 풀어내야만 합니다. 상대방의 말에 내 생각을 첨가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고의로 빠트리면 안 됩니다.  


‘그랬구나~’ 게임의 규칙은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숙지하고 이해하려면 차분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관조’는 조명을 비추어 보듯 자세하게 살핀다는 말입니다. ‘관조’는 자신의 ‘견해’, 혹은 ‘주장’을 먼저 내세우지 않습니다. ‘관조’는 나의 ‘견해’와 ‘주장’이 ‘사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볼 뿐입니다.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나’를 비우고, ‘나’를 내려놓는다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의 핵심이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나’를 비운다는 말은 곧 나 자신의 ‘견해’와 ‘주장’,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나 자신의 ‘생각’을 내 마음 속에서 무장해제 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저 ‘관조’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지.’하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세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가 아니라 ‘네 생각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최대한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전심전력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곧 나의 ‘견해’와 ‘주장’을 무장해제 시키는 과정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도 노력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꼼꼼하고 차분하게 관찰하는 것이 곧 ‘나’를 비우는 길입니다.  


그런데 박명수와 정준하의 ‘그랬구나~’ 게임을 보고 있자면 ‘그랬구나~’를 언제 말하는지에 따라서 전체적인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짐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격 급한 박명수는 정준하의 말을 듣다가 중간에 말을 끊고서 ‘그랬구나! 그랬어~’하면서 정준하의 말을 반복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반복하고 마지막으로 ‘그랬구나~’라고 하면 상대방의 한 말의 ‘사실’, 즉 팩트를 충실하게 이해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그러나 ‘그랬구나~’를 앞에 먼저 말하고 상대반의 말을 그 뒤에 이어서 반복하면, 마치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말이 가지는 사살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견해’를 확인하는 모양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려고 하기보다, 내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보이고 들리는 사실들을 내 생각에 끼워 맞추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쉽게 생각해봅시다. ‘숨은그림찾기’ 놀이는 그림 속 어디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모를 때는 하나하나 숨은 그림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러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으며, 더 이상 숨은 그림이 아닙니다. 한 눈에 봐도 숨은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숨은 그림을 찾기 힘든 이유는 대부분 그림들 보면서 ‘여긴 장화처럼 생겼네, 이건 사람 얼굴같이’라고 미리 생각해 버리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내 스스로가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내 생각에 세상을 짜 맞추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우리들의 이런 경향이 이 세상의 숱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충돌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하기 전에 우선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도 충분히 납득하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많은 갈등과 대립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랬구나~’ 게임이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와 ‘주장’, 그러니까 나의 ‘생각’이 사상누각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랬구나~’ 게임은 타인을 관조함과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많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을까요? 박명수와 정준하처럼 장난처럼 ‘그랬구나~’ 게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잘 듣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잘 듣기만 해도 ‘나’를 비우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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