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문)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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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784회 작성일 19-12-1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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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산에는 참 돌도 많습니다. 


어떤 건 바위라고 하고, 어떤 건 돌멩이라고 하고 또 어떤 건 자갈이라고도 합니다만 모두 돌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여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스님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신도라고 합니다. 모두 다 뭉뚱그려 사람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 모든 존재들이 다 제각각이란 걸 발견한 순간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당연히 그 제각각이란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생김새만이 아니라 마음씀씀이까지 말하는 거지요. 생각이 다 제각각이다 보니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내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아서. 화가 나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깁니다. 서로 사랑하던 연인들도,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부부도 서로 생각이 달라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싸우다가 급기야는 갈라서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아랫사람들에게 윽박지르고 강요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좋아하고 싫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구산스님은 “사람마다 나름대로 나란 멋에 살건마는 이 몸은 언젠가 한줌 재가 아니리”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다 나란 멋에 산다는 이 사실을 알기까지는 참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사실을 완전히 체화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출가해서 절에 들어와서 “속이 세 번은 새까맣게 타야 제대로 중노릇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대중들 속에서 성질 죽이고 양보하고 맞추어 가면서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이겠지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쌀을 씻을 때 쌀알을 하나씩 하나씩 씻으면 백날이 가도 깨끗하게 씻을 수 없다. 같이 씻어야 쌀알과 쌀알이 서로 부딪히면서 깨끗하게 씻긴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나 자신의 모난 구석을 다른 이가 자신의 몸을 깎아가며 원만하게 다듬어 준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의 버려야 할 점들을 다른 이가 자신을 희생하며 깨끗하게 씻어준다든 말입니다.  


인간은 거울 같은 다른 도구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정면으로 직시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정작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표현을 달리하면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이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혼자서는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알기도 어렵습니다. 


쌀알이 서로 부딪히면서 깨끗해지듯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제각각인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자기 살을 깎아가면서 서로를 다듬어주고 서로 성장시켜 줍니다. 이것이 대중생활의 묘미입니다. 대중 속에서 화합하며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층 더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한다면 대중생활에서 화합할 필요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서로 탁마하는 발전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제각각이라는 사실, 즉 다양성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본 법칙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이의 모난 점, 개선해야할 점을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의 모난 점, 개선해야할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서로 인정해야 모난 것은 부드럽게, 버릴 것은 버릴 수 있습니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겠다.”는 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같이 살아가겠다는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 다른 이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발상인지 알게 됩니다.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마치 하나의 쌀알이 자신은 깎여 내리지 않으면서 다른 쌀알들은 모난 것은 부드럽게, 지저분한 깨끗하게 지워버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이 매사에 다 제각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상식이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널목의 빨간 신호등에서는 멈춰야 하고, 녹색 신호등에서는 건너야 합니다. 누구나 다 이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서양 문화의 영향이 일상 속에 깊이 뿌리내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상중인 가족들은 검정색 옷을 입고 새롭게 결혼하는 새 신부는 하얀 드레스를 입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제각각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자기 생각대로, 자기 스타일대로, 자기 습관대로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별생각 없이 상식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상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살아가면서도 그럭저럭 무리 없이 이 사회가 굴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많은 것들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합니다. 상식은 전통이기도 하고 문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집단적 무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한순간도 지금처럼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 육신은 어느 하나 꼭 같은 것 없이 다 다르고, 이 세상에서 ‘나’는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존재인데 생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습관, 생각, 취미, 정치적 견해, 신념, 도덕 윤리 등은 상당히 많은 부분 다른 이, 먼저 살았던 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내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 생각이 옳다고 철썩 같이 믿고 주장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남의 옷을 가져다 입고서 자기가 만든 옷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는 것은 물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그 사람을 사기꾼, 아니면 도둑놈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경멸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자신이 한심한 사기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한심한 사기꾼임을 알지 못하는 것은 첫째, 남의 생각, 전통, 통념, 기존의 가치관, 도덕 윤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부처님의 말씀이라도 우선 잘 들어 깊이 가슴에 새기고, 다음에 스스로 그 말을 자신의 머리로 잘 생각해본 후에, 직접 실천해보아서 틀림이 없어야, 비로소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근본적으로 내가 잠깐 가지고 있으면 내 것이라고 단정해버리는 아주 뿌리 깊은 습관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것은 아끼고 소중히 하려고 합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어느 누구도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 눈이 멀고 마음이 닫히면 그렇게 많고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우선 첫걸음은 다만 바라보려고만 하는 노력입니다. 그래야 나라는 생각, 내 것이라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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