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문) 화를 치료해주는 특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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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795회 작성일 19-12-17 23:28본문
<화를 치료해주는 특효약>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으면 낫습니다. 소화가 안되면 소화제를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화가 났을 때 화를 없애주는 특효약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화를 없애주는 특효약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 무척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5시에는 자비신행회에서 청년식당 배식 봉사를 하고, 6시에 저녁식사를 겸한 간담회, 그리고 7시에 증심사로 들어와서 수요야간법회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일정이 빡빡해도 제가 요령껏 잘 했으면 문제가 없는데 처음부터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 날 청년식당 저녁 메뉴에 스파게티가 나왔습니다. 봉사만 하고 바로 갔어야 되는데, 스파게티가 맛있어 보여서 ‘한 입만...’ 하면서 먹었는데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그릇을 다 비워 버렸습니다. 스파게티를 먹는데 시간을 허비를 해 버린 겁니다. 허겁지겁 나와서 다음 장소로 가려고 네비를 찍었는데... 주소가 안 뜨는 겁니다.
그 때부터 살짝 당황이 되었습니다. 이미 시간은 6시가 넘었는데 아무리 네비를 찍어도 안 나와서 핸드폰에 있는 네비로 겨우 찾았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의 네비가 골목길로만 가라고 가리키는 겁니다. 처음 가보는 골목길을 가니까 마음이 불안 불안한데다가 늦어서 조마조마하기도 한데, 그 와중에 전화가 자꾸 오는 겁니다. 전화가 올 때마다 핸드폰 화면에 네비가 사라지니까 살짝 짜증이 나는 거예요. ‘약속을 잡으려면 미리미리 이야기를 해서 여유 있게 약속을 잡지. 무슨 약속을 이렇게 잡나?’ 혼자서 짜증이 나서 전화 오면 끄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왜냐면 핸드폰 화면을 봐야 되니까요 겨우 골목길을 나오니까 삼거리가 나왔습니다. 삼거리에서 신호에 걸려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제사 마음이 좀 차분해지면서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내가 스파게티를 안 먹고 바로 나왔으면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스파게티를 먹는 바람에 내가 늦어 놓고 엉뚱한 사람한테 혼자 화를 낸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됩니다. 그때 시간이 늦어서 초조하고, 모르는 골목길로 가라고 하니까 불안하고, 그런데 자꾸 전화가 와서 네비 화면은 꺼지고, 그러니까 짜증은 나고…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된 겁니다. 불안, 초조 같은 거친 감정들이 마음을 가득 채워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내적인 상태와 주변 여건이 내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는 외적 상황이 겹치면서 불안, 초조 같은 거친 감정은 짜증이라는 더 강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증폭된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으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외적으로는 주변 여건이 내 의도대로 통제된다면 짜증 같은 고통을 동반하는 거친 감정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주변 여건을 내 의도대로 통제하는 것은 나 하나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이미 생긴 거칠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없애는 것은 내가 하기 나름입니다.
짜증 같은 부정적이 감정을 제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쌓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쌓이지 않게 하려면 처음에 티끌만큼 쌓일 때 알아 차려야 쉽게 없앨 수 있습니다. ‘보면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감정, 느낌을 내가 알아 차려서 보면 그 감정은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감정이 여기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75분의 1초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감각이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순간입니다. 마음 속의 느낌은 이 찰나의 순간에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짜증이 난다고 하면 최소한 몇분, 아니면 몇십분 동안 지속됩니다. 짜증이 났다가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몇 초는 된다고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75분의 1초동안에 짜증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일까요? 모든 마음의 작용은 찰나의 순간에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다음 찰나의 생각은 바로 앞 찰나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바로 직전 찰나에 짜증이 생겼다가 사라졌다면 이것에 영향을 받아서 이번 찰나에 짜증이 다시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이렇게 사슬처럼 짜증이 연결되어서 마치 몇 초동안 아니면 몇 분동안 짜증이 가시지 않고 이어지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슬처럼 연결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체가 하나가 아니라 각각의 짜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연결고리만 끊으면 자연스럽게 짜증이 지속되는 것도 사라질 것입니다. ‘보면 사라진다’는 말에서 본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직전 찰나의 생각을 본다는 것입니다. 내가 75분의 1초 전에 무슨 느낌이 생겼다가 사라졌는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을 관찰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됩니다.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혹은 생각하는 순간, 이미 지금은 지나가 버린 찰나가 되어버립니다. 다만 편의상 지나간 찰나의 생각과 느낌을 관찰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관찰한다고 말할 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금 이 찰나의 마음은 오직 관찰하는 작용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전 찰나의 생각이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이전의 느낌이나 생각이 지속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의 느낌과 생각을 관찰하는 마음의 작용은 찰나에서 찰나로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보기만 하면 사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로 풀어서 보니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쉬운 거지 쉬운 게 아닙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왜 내가 골목길을 막 헤맬 때 내 안의 불안, 초조, 짜증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만약 내가 아는 길이었고, 시간이 넉넉했으면 짜증이 났을까요? 마음이 불안과 초조로 가득 차 있으니 여유가 없었습니다. 여유가 없으니까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을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을 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이 빈자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소에 꾸준하게 마음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찰나 찰나 내 안에서 어떤 느낌, 생각이 생겼다가 사라지는지 놓치지 않고 관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건 다른 게 아닙니다. ‘아, 내가 짜증을 내고 있구나. 내가 지금 심심해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아차리려고 평소에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노라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괴롭고 짜증나고 슬프고 우울하고 지루한 순간들이 불쑥 불쑥 찾아옵니다. 이런 거친 감정들은 금세 마음을 가득 채우고는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습관적으로 관찰하고 있다면 이런 거친 감정들이 마음을 꽉 채우지는 못합니다. 수행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항상 마음의 빈자리를 가꾸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내 마음을 바라보려면 평소에 내 마음에 빈자리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화를 없애는 특효약입니다. 이게 바로 부처님이 조제한 정신건강을 위한 특효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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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27_중현스님.MP3 (10.0M) 5회 다운로드 | DATE : 2020-02-17 22: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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