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 강의) 수심결 2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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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증심사 댓글 0건 조회 861회 작성일 20-02-1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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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그대가 만약 내 말을 믿어 의심이 단박 없어지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참되고 올바른 견해를 일으키어  

친히 그 맛을 보고 스스로 옳다는 경지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마음 닦는 사람의 알아 깨달은 자리다.  

다시 더 계급과 차례가 없으므로 돈頓이라고 한다.  


이것은 ‘믿음의 단계에 모든 부처님의 과덕과 계합하여 조금도 차이도 없어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한 것과 같다.  



<해설>

먼저 몇 가지 용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解悟는 도리를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보조스님은 깨달음을 해오와 證悟로 나누고 증오는 더 이상 닦음이 필요 없을 만큼의 완전한 깨침이라면, 해오는 닦음을 필요로 하는 깨침으로 돈오와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절요’에서 스님은 해오는 ‘마음의 성품과 모양을 밝게 깨치는 것’이라고 하였고, 증오는 ‘마음이 오묘한 극치에 나아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해오가 마음의 실상에 확실히 눈뜬 것이라면 그것이 생활 속에 완전히 드러난 경지가 증오라 하겠습니다.  즉 증오는 습기가 완전히 사라져서 더 이상의 수행이 필요 없는 경지입니다. 


信因는 십신인위의 준말입니다. 보살이 수행하는 52계위 중에서 처음 10위로 번뇌하는 마음을 들어 보이고 믿음을 가지는 단계로서 믿음에 의심이 없는 지위입니다. 52계위는 10信, 10住, 10行, 10廻向, 10地, 等覺, 妙覺입니다. 그만큼 불법을 공부하는데서 믿음은 중요합니다. 믿음은 도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나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결코 부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52계위의 첫 단계인 것입니다. 첫단계이니만큼 첫걸음이 잘못되면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믿음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예를 들어 등산을 한다고 칩시다. 초행길을 혼자서 간다면, 누구랄 것도 없이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합니다. 표지판이 나올 때마다 멈춰 서서 확인하고, 또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이리로 가면 정상이 나와요?’라고 물어봅니다. 길이라고는 이 길 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동행인이 있으면 덜 불안합니다. 그 동행인에게 이 길이 초행길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自信感이란 자기 자신의 행동에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뭘 하나 하더라도 불안하고 남의 눈치를 보게 되지만, 자신감이 있으면 나의 행동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도 않고 남의 눈치도 덜 보게 됩니다.  


비록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를지라도 그 사람과 같이 한다면 마음이 든든한 사람이 있습니다. 신뢰信賴를 주는 사람, 나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입니다.  


이렇듯 아무리 사소한 행위라도 믿음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밥을 떠서, 입에 넣고, 씹어서, 삼키는 행동은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행동에 대한 아무런 확신이 없어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식사하기가 힘든 환자라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확인하기 쉬울수록 믿음의 필요성도 줄어듭니다. 그 반대일수록 믿음의 필요성은 절실해질 것입니다.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행동하는 힘도 강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시작할 수도 없습니다.  


행동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는 것을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 없기 때문에 당장 눈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지금 여기서 확인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해내려는 의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믿음을 소중히 합니다. 충분히 따져보지도 않고 쉽게 믿어버리거나, 편견을 가지거나, 잘못된 신념信念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혹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서 의욕 상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떨어저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뿐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10신은 信, 念, 精進, 慧, 定, 不退, 廻向, 護法, 戒, 願으로 단계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신(信) - 처음으로 발심하여 믿는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바로 씨앗이 되어 나중에 성불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2. 염(念) - 한번 믿음을 가진 것을 변하지 않고 마음속에 새겨서 잊지 않는 단계를 말합니다. 

3. 정진(精進) – 믿는 바대로 게으름 없이 부지런히 정진하는 단계입니다.  

4. 혜(慧) - 바른 이치를 분별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나쁜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 단계입니다.  

5. 정(定) - 이치에 맞는 분별만으로는 잘못되면 편협하고 산만해져서 한 곳으로 나아가기 힘들므로 조금이라도 잘못된 생각을 그치고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6. 불퇴(不退) - 정(定)에 의하여 잘못된 생각을 그쳐서 진리를 볼 수 있는 지혜가 밝아졌으  므로 어떠한 장애라도 극복하여 물러서지 않는 단계를 말합니다.  

7. 회향(廻向) - 수행으로 얻은 공덕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부처님에게 올리는 단계를  

말합니다.  

8. 호법(護法) - 부처님의 가르침의 법을 언제라도 보존하여 마음에 지니고 잃지 않도록  

마음을 쓰는 단계를 말합니다.  

9. 계(戒) - 스스로 마음을 조절하고 헤이해지지 않게 바로 잡는 단계를 말합니다.  

10. 원(願) - 모든 중생과 더불어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염원을 분명히 하는 단계  

입니다.   


과덕이란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덕, 완성하신 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단계에 모든 부처님의 과덕과 계합하여 조금도 차이가 없어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 함은 화엄경에 나와 있는 이러한 10신의 단계에서 나의 본성이 부처님이 이룬 덕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확실히 아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의미입니다. 10신의 마지막 단계는 자타가 일시에 성불하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분명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내가 곧 부처임을 분명히 아는 것, 중생이 곧 부처임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믿음의 내용입니다.    


보조스님은 ‘의심이 단박에 없어지고, 스스로 경험하여 옳다는 경지에 이르면 이것이 바로 해오의 자리이며 다시 더 계급과 차제가 없으므로 頓’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오는 10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즉 해오는 돈오이며, 동시에 해오는 중생이 곧 부처이며 내가 곧 부처라는 믿음이 굳건한 상태입니다. 믿음은 수행의 원동력이 굳건하게 서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며, 돈오는 마음이 실상을 완전하게 깨쳤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며, 해오는 여전히 수행이 필요한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10신, 돈오, 해오는 같은 차원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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