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행생활) 왜 칠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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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9회 작성일 21-05-16 14:00본문
칠성신앙의 유래
칠성신앙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도교에서 북두칠성의 신앙 안에 도교적인 내용을 담아냈으며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북두칠성을 신성시하는 신앙으로 굳어졌다. 칠성신앙은 고구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정도로 우리 정신세계와 밀접하느냐 하면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그림에서도 그 흔적이 묻어난다. 근정전의 그림은 임금을 북극성으로 비유하고 좌우로 일광 월광이 보필하고 그 주위를 일곱 마리 용이 호위하고 그 주변으로 스물 열덟 개의 대신들이 호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찰의 칠성탱과 매우 흡사하다.
칠성님이 하는 일
그렇다면 칠성님은 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첫 번째, 비를 많이 내리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물을 상징한다. 시골 아낙네가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할 때, 떠놓은 물 자체가 칠성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칠성님은 수명을 관장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탈 없이 오래 살게 해 달라고 칠성님께 빌었으며, 수명을 관장한다 함은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삶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옛 선조들은 생각했다.
하여 예전에는 칠성님께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액막이를 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 탯줄이 목에 걸렸다던지 피가 유난히 많이 묻었다던지 하는 경우에는 칠성님께 공을 들이며 액막이를 했고, 사람이 죽을 때는 관 바닥에 칠성판이라고 하는 것을 깔았다. 염을 해서 시신을 묶을 때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님을 상징한다. 지금도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쓴다. 우리 선조들은 ‘사람은 칠성님의 품에서 와 이 세계에서 살다가 다시 칠성님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인간이 처음 온 그 자리가 바로 칠성님의 품이라고 할 만큼 칠성님을 우리의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령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칠성탱 보는 법
북두칠성은 북극성 주변을 돈다. 그래서 북극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이 가운데 있고 그 주변에 일곱 분의 보살님들이 있다. 불교에서는 여래가 칠원성군으로 화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칠성탱의 가운데 있는 분이 바로 치성광여래님이다. 치성광여래란 어마어마한 빛이 나는 부처님이라는 말이다. 별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별은 북극성이다. 고로 치성광여래님은 북극성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북극성을 자미대제라고 하고, 인도에서는 묘견보살이라 한다.
치성광여래는 해와 달이 보위한다. 오른쪽 어깨 위의 빨간 원이 일광보살 즉 해를 상징하고, 왼쪽 어깨 위 하얀 원은 월광보살 즉 달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왼쪽을 더욱 상서롭게 여긴다. 하여 일광이 왼쪽이고 월광이 오른쪽에 위치한다. 사족으로 부처님의 왼쪽, 오른쪽을 이야기할 때는 부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부처님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짓는다는 것을 알아두자. 나머지 스물여덟 분의 대신들이 28수 별자리를 상징한다. 북두칠성 주변의 28개 별들이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것이다.
칠성신앙을 승화하여 자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
얼마 전 눈이 많이 왔을 때 사람들이 눈사람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뉴스 전파를 탔다. 그런 눈사람을 누군가 부수고 지나갔다는 소식 또한 들려왔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누군가 정성들여 만든 눈사람을 폭력적으로 짓밟는 것을 보고 헤어질 결심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옛 선조들은 북극성이나 북두칠성, 산 등을 신격화하여 믿고 숭배했다. 물 한 잔도 허투루 대하지 않고 깨끗한 그릇에 담아서 정성스럽게 대했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 다 미신이니까 필요 없고 오로지 돈이 모든 걸 다 해결해준다’고 믿는다. 현대인들에게는 돈이 신앙이다. 돈이 신앙이니까 돈이 아닌 다른 것들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처럼 하늘의 별을 쳐다보지 않는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들이 우리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다. 칠성신앙이 미신이라고 배척하기 전에 그 행위에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지를 보자. 나무 하나 풀 하나 별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다시 보자. 그런 마음으로 칠성님께 비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주변 사람들을 막 대하고 길가에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든 눈사람을 아무 이유없이 발로 차서 부수는 것보다 백배천배 나을 것이다.
칠성신앙을 미신이라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자. 행위 하나하나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자. 그리하여 이 사회에서 조금 더 바르고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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